77사변(노구교(盧溝橋)사변)

2014-08-15 15:59:03 출처: 신화망 한국어판

   (자료 사진)

   1937년 7월 7일 밤, 노구교에 주둔한 일본군이 중국 지방 당국에 통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주둔 부대 진지 부근에서 이른바 군사훈련을 진행했으며, 일본군 한명이 실종됐다는 핑게로 베이핑(北平,베이징의 옛명칭) 서남에 위치한 완핑(宛平, 오늘의 노구교진)에 진입해 수색할 것을 요구했고 중국군에 의해 거절당한 뒤 즉시 완핑성과 노구교를 진공했다. 중국 주둔 부대 29군 37사 219단이 분연히 일떠나 반격하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77사변은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며 전면적 중국 침략의 시작이다.

   중국의 항일전쟁은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서 일본 육군 총병력의 3분의 2 이상을 반격, 견제했고 중국 군민 3500여만명이 이 전쟁에서 목슴을 잃었다. 8년 간의 처절한 싸움을 거쳐 중국 인민은 궁극적으로 항일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승리를 위해 말살할 수 없는 기여를 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투항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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