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린 싸움-당안속 중국의 항일전쟁" 제2집: “8.13” 송호회전

2014-08-27 17:05:31 출처: 신화망 한국어판

(档案里的中国抗战·图文互动)(1)国家档案局发布《浴血奋战——档案里的中国抗战》第二集:八一三淞沪会战

   1937년 8월 9일, 제9집단 장즈중(張治中) 총사령이  장제스(蔣介石) 에게 보낸 일본군 증병상황에 관한 전보문.

   [신화사 베이징 8월 27일] 26일, 국가당안국(國家檔案局)은 홈페이지에서 <피어린 싸움-당안속 중국의 항일전쟁> 제2집인 <“8.13” 송호회전(淞滬會戰)>을 발부했다.

   제2집의 설명에 따르면 칠칠사변(七七事變)이 발생한 뒤 일본 해군은 또다시 상하이 지역에서 중국군을 도발했다. 1937년 8월 9일, 일본 해군 중위(中尉) 大山勇夫 등 2명이 차를 운전하고 상하이 훙차오(虹橋)공항에서 도발적 행위를 하다가 주둔군의 안보대원들에 의해 총살됐다. 일본군은 이를 빌미로 군함을 파견해 황푸장(黃浦江)과 창장(長江) 입구에서 순항하면서 공격할 위협을 했다.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중국 제9집단군 총사령관인 장즈중(張治中)은 명령을 받고 제87,88사단을 비롯한 부대를 인솔하여 상하이를 향해 진군했으며 8월 13일에 지령대로 상하이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해군 함대 훙커우(虹口) 기지를 포위, 공격해 적군을 바다에 몰아넣으려 했다. “8.13” 송호회전이 바로 이로부터 시작됐다.

   이에 일본군의 최고 사령부에서는 즉각 상하이 파견군을 조직하고 마쓰이 이와 네(松井石根)를 사령관으로 상하이에 있는 일본군을 증원하기 위해 사단 2개를 상하이로 보냈으며 9월과 10월 사이에 잇따라 병력 30만을 상하이에 추가 파견했다. 중국 측에서도 지속적으로 송호회전 전장의 병력을 늘렸으며 선후로 70여개의 사단을 상하이로 보냈다. 중국 군대는 전투가 전례 없이 격렬한 싸움에서 용감하게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중 스싱창고를 수호하는 전쟁(四行倉庫保衛戰)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전역이다. 이번 전투에서 중국 관병들이 나라를 위해 전력으로 싸우고 11월까지 버텨 일본군이 “3개월 안에 중국을 멸망시키겠다는” 망상을 깨뜨렸다. 그후 일본군이 항저우(杭州)만 진산웨이(金山衛) 등 지역에서 상육해 상하이 전장에 대한 포위 태세를 형성했기 때문에 상하이 수비군은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11월 8일부터 상하이에서 철수했다. 11일, 상하이는 일본군에 함락됐다.

   송호회전은 3개월간의 시간을 경과했다. 중-일 쌍방은 연이어 막강한 군대를 투입했으며 사상자 수가 막대한 항일전쟁 발발 후 정면으로 맞선 첫번째 대규모 접전이다. 이번 전역은 중-일 전쟁의 전략적국면을 변화시켜 성공적으로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을 화베이(華北) 전장에서 화둥(華東)전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중국 측이 전략 주동권을 쟁취해 중국의 광공업을 내지로 이전하여 민족 공업 실력을 보존하는 데서 보귀한 시간을 쟁취했다.(번역/서위, 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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