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어린 도시 수비전
비참하고 장렬했던 난징 보위전
독서 안내
1937년 7월 7일, 일본이 의도적으로 루거우차오(盧溝橋)사변을 조작하고 전면적인 중국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8월 13일, 일본군이 상하이(上海)를 점령한 뒤 난징을 공격했다. 11월 24일, 중국 정부에서는 탕성즈(唐生智)를 경비사령장관으로 임명, 10여만 병력을 투입해 난징 수비에 나섰다. 12월 1일, 일본 참모본부에서 난징을 공격할 데 관한 작전 명령을 내렸고 10여만 정예 장비를 갖춘 일본군이 여러갈래로 나뉘어 난징을 공격했다. 중국 수비군은 장비가 낙후하고 조건이 악랄한 상황에서 일본군과 결사적으로 싸웠다.
일본군이 광화문(光華門)을 공격하고 있다
일본군이 중화문(中華門)을 공격하고 있다
정보연결
셰청루이(謝承瑞) 교도연대 연대장이 전사들을 거느리고 광화문을 증원했다. 1937년 12월 10일 저녁 8시, 일본군이 성밖에서 광화문 외성의 성문통로에 쳐들어왔다. 셰 연대장이 직접 결사대를 거느리고 휘발유통을 짊어지고 성벽 전루(箭樓)에 올라 휘발유통을 성문통로로 내리던진 뒤 불을 붙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일본군이 사처로 도망다녔고 성문통로에 숨어 있던 일본군을 전부 섬멸했다. 전쟁 전부터 병을 앓고 있던 셰청루이는 불행하게도 휘발유 화염에 화상을 입게 됐고 결국 체력이 버텨내지 못해 읍강문(挹江門)까지 퇴각하고 나서 희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