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공공추도 독본(초등학교판)

2014-09-17 09:32:55 출처: 신화망 한국어판
   2. 들이닥친 재난 

일본군의 죄행

독서 안내 

   난징대학살은 일본군이 난징에서 범한 대규모 학살, 강간, 약탈, 방화 등 전쟁 죄행과 반인도적인 죄행이다. 일본군의 대학살 폭행은 1937년 12월 13일, 난징을 점령해서부터 6주간 지속됐다. 대학살에서 일본군은 무기를 내려놓은 중국 군인과 무고한 평민 30여만명을 살해했고 2만여건 이상의 부녀자 강간을 범했으며 도시 전체에서 방화하고 약탈했다. 대참사가 지나간 뒤 난징성(城) 내 3분의 1에 달하는 건물이 훼손되었고 재산 손실이 부지기수였다.  

      중국 침략 일본군 난징 집단 학살 현장 중의 하나 

정보연결 

살인 경기 

   우시에서 난징으로 진공하는 도중에 일본군 제16사단의 무카이 토시아키(向井敏明), 노다 타케시(野田毅) 두명의 소위 장교는 장관의 격려속에 “살인 경기”를 벌이기로 결정, 난징을 점령하기까지 먼저 100명을 죽이는 자가 이기는 것으로 약속했다. 이들은 우시, 창저우(常州), 전장(鎮江)의 쥐룽(句容)에서 탕산(湯山)까지 무참한 도륙을 일삼아 무카이 토시아키는 89명을, 노다 타케시는 78명을 죽여 전부 100명미만에 그쳤다는 이유로 “경기”를 계속할 것을 결정했다. 12월 10일 점심, 쯔진산(紫金山)밑에서 만난 두 사람의 군도가 모두 흡집이 생길 정도로 사람을 베어죽인 상태였다. 노다 타케시는 105명을 죽였다 하고 무카이 토시아키는 106명을 죽였다 했다. 그러나 누가 먼저 100명을 죽였는지 확인할 수 없어 150명을 먼저 죽이는 자가 승리하는 것으로 경기를 계속하기로 했다.《도쿄 일일 신문》은 이들의 폭행에 대해 연속 보도했고 이들을 “황군의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일본 항복후 이 두 전범은 작전 기간에 중국포로 및 평민을 연속으로 도살한 죄를 물어 난징에서 정의의 재판을 받았으며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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